시간의 유한함과 직관을 향한 믿음
올해 신설된 학과의 신입생 친구들에게 자신을 믿으라는 마음으로 쓴 글입니다.
게임을 만들며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인벤토리가 사실상 무한하면 사람들은 길에서 만난 물건을 모두 줍습니다. 나중에는 수백 개의 아이템 속에서 필요한 것을 찾고, 비슷한 옵션을 비교하느라 시간을 씁니다.
바지가 100개 있는데 새 바지를 주울 때마다 옵션을 비교하고 버리기를 반복한다면, 게임이 어느새 바지 옵션 비교 시뮬레이션이 됩니다. 반면 인벤토리가 20칸뿐이면 불필요한 물건을 버리고 꼭 필요한 것만 남겨, 게임 자체에 집중하기 쉬워집니다.
삶도 비슷합니다.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동시에 모두 할 수는 없습니다.
1인 개발을 하며 메일과 수천 줄의 코드, 고객 문의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게 됐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일했어도 완성도가 낮거나 끝내지 못한 프로젝트가 많았습니다. 여러 분야를 오가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하지 못한 채, 흔적 없이 사라진 작업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일본의 정형시 하이쿠를 설명한 글을 읽고 제한의 힘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5음·7음·5음, 총 17음이면 어린아이도 3초 만에 읽을 만큼 짧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시대를 초월한 작품이 나옵니다. 넣고 싶은 단어를 모두 쓸 수 없기에 가장 중요한 단어를 남겨야 합니다.
이 제한은 인생의 유한함도 떠올리게 합니다. 시간은 언젠가 끝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을 미루고, 스스로도 믿지 않는 가능성을 시험하거나 타인의 기대를 맞추는 데 시간을 쓰곤 합니다.
무엇을 하느냐만큼 무엇을 하지 않느냐가 중요합니다. 가치 없는 일을 하는 동안에는 같은 시간에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삶을 세상에 최상의 것을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임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이 게임의 인벤토리는 시간입니다. 남은 생의 1년을 한 칸으로 보면 선택이 다르게 느껴집니다.
20대를 기준으로 활발하게 무언가를 남길 기회가 30~40칸이고, 프로젝트 하나가 평균 1~3칸을 차지한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면 담을 수 있는 프로젝트는 20여 개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유한함을 의식하면 타인의 기대나 불필요한 절차보다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이 중요해집니다. 어떤 일을 하지 않을지 정해야 직관이 가리키는 소수의 프로젝트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직관이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이미 알고 있다고 믿습니다. 원치 않는 일을 할 때 느끼는 답답함과 불안이 그 신호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