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선 잃어버리면 다시 복구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삶은 완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는 가끔 잃어버린 것도 언젠가 복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몇 달씩 공들여 만든 작품과 그 작품이 받았던 반응조차 흔적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The Lee Integration이라는 티스토리 블로그를 약 4년간 운영했다. 게임과 프랙 무비를 다뤘고, 중학교부터 대학교 2~3학년까지 꾸준히 만든 프랙 무비와 시네마틱 영상은 프리에그와 유튜브에 올렸다. 프리에그는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초기에 문을 닫았다.
블로그에는 다른 아티스트의 단편을 일주일에 수십 개씩 찾아 평가하고, 어떤 영감을 얻었는지도 적었다. 게임으로 시네마틱 영상을 만드는 일이 즐거웠고, 머시니마 문화에도 가끔 기여했다. 내 몸의 70%는 하드코어 게이머이자 영상 아티스트의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출발점에는 아바(Alliance of Valiant Arms)가 있었다. 당시 아바를 즐겼던 사람들 중에는 지금 창작, 프로그래밍, 해킹, 영상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영상으로 이어진 인연에는 아바의 프랙 무비 문화가 큰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다시 만나면 어떻게 아바가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는지 이야기하곤 한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알게 된 정열폭발님도 아바의 무게 있고 아름다운 밀리터리 아트에 매료되어 그림을 시작했고, 만화가가 되었다고 했다. 나 역시 레드덕에 들어가는 것이 꿈일 만큼 아바에 빠져 있었다. 게임 개발자나 컷신 연출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굳힌 작품은 콜 오브 듀티였지만, 아바는 그 업계에 들어가고 싶다는 열망을 키운 게임이었다. 영화 같은 게임을 만들고 싶은지,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구분하지 못해 방황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에서 방황하는 동안 블로그가 해킹당했고, 해커의 약관 위반으로 기록이 모두 사라졌다. 가족 중 한 명은 유튜브에 5년 이상 쌓아온 프랙 무비와 단편영화들을 전부 지웠다. 작품뿐 아니라 그때의 추억과 사람들의 반응도 함께 사라졌다.
유튜브에서 백업본을 받을 방법이 없는지 필사적으로 찾아다녔다. 결국 내 인생에서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와 상관없이, 어떤 것은 복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힘들게 받아들여야 했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잃어버린 소스코드나 발명 노트, 화재로 사라진 연구 기록일 것이다. 창작물뿐 아니라 건강이나 신체의 일부를 잃기도 한다. 돈은 다시 벌 수 있지만, 같은 절차를 밟아도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렇다고 후회에 머무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되찾을 수 없는 것을 받아들여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