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플레이 할 만한 게임인가? – (feat 신만이 아는 세계)
요즘 현실의 예측 불가능성 앞에서 프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자주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가장 몰입했던 만화 중 하나인 『신만이 아는 세계』가 떠오른다. 주인공 카츠라기 케이마는 심정적으로도 가까웠던 인물이다.
케이마에게 게임은 시간을 들이면 패턴을 파악하고 좋은 결말로 향하는 경로를 찾을 수 있는 세계다. 반면 현실은 예측하기 어렵고 노력에 맞는 보상도 보장되지 않는다고 여긴다.
정확히는 보상이 전혀 없다는 뜻보다, 행동과 결과의 관계가 일관적이지 않고 예고도 없다는 불만에 가깝다.
케이마의 명석함은 패턴을 찾는 데서 드러난다. 히로인들의 영어 시험을 도울 때도 교과서부터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교사의 기출문제와 성격, 행동을 바탕으로 출제 가능성이 높은 범위를 좁힌 뒤 “이 범위를 벗어날리가 없다”라고 확신한다.
그가 미소녀 연애 게임을 깊이 파고드는 이유도 패턴화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의 사건까지 패턴으로 정리해 빠르고 간결한 해결책을 찾는다. 게이머의 추상화와 패턴 학습에 관해서는 라프 코스트의 『재미 이론』에서도 설명한다.
최종권에서 제목의 의미가 드러난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건을 관통하는 진실을 파악한 존재가 케이마, 즉 함락신뿐이기에 ‘신만이 아는 세계’다. 나는 여기에 원인과 결과를 명확히 연결해 볼 수 있는, 그만의 세계라는 의미도 있다고 느꼈다.
케이마는 세상을 자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과 그 밖의 것으로 극단적으로 나눈다. 스티브 잡스의 이분법적인 시각을 떠올리게 하지만, 불안정성과 강한 감정을 좇았던 잡스와 달리 케이마는 예측 가능성을 추구한다.
그렇다고 이미 답을 아는 단순한 문제에 감동하는 것은 아니다. 치밀하게 추측하고 여러 번 시도한 끝에 혼돈 속에서 패턴이 보이는 순간, 어려운 도전과제를 수십 번 만에 풀어내는 순간에 감동한다.
당장은 무질서해 보여도 풀이는 존재해야 한다. 수십 번, 수백 번 시도해도 패턴을 찾을 수 없고 해결 가능성조차 알 수 없다면 도전 의식은 좌절로 바뀐다. 현실이 그에게 불만스러운 게임인 이유다.
케이마는 복잡한 현실보다 변수가 적고 간결한 추상화 모델을 우월하게 여긴다. 게임은 현실을 추상화하며 규칙에 불필요한 정보를 덜어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정리되지 않는다.
케이마는 현실에는 절망했지만 자신에게는 절망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작품 속 그는 좋은 결말로 가는 경로를 안다고 믿기에, 당장 오해를 받거나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선택도 감수한다. 선택 이후의 세계를 안다는 확신이 그를 움직인다.
그러나 기계적인 계산처럼 보이던 선택 뒤에서도 부담과 동요를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패턴화할 수 없는 현실을 상징하는 코사카 치히로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에서다.
그의 천재적인 패턴화 뒤에는 예측 불가능한 현실을 회피하려는 마음도 있었다. 마침내 케이마는 여전히 불공평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현실에서도 플레이할 보람을 발견한다. 그렇게 현실의 예측 불가능성을 사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