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위치 아카데미아 – 꿈을 믿어요
리뷰에 앞서
저는 리틀 위치 아카데미아의 OVA, 극장판, TVA를 넷플릭스에서 영어 더빙으로 보았습니다. 당시 미국 넷플릭스에서는 일본어 더빙에 한국어 자막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어권 성우들의 연기에 만족했지만, 일본어 더빙으로도 다시 보고 싶습니다.
이 글은 작품 리뷰이면서 제 꿈을 돌아보는 글이기도 합니다. 주인공을 보며 떠오른 경험들을 작품 이야기와 함께 적었습니다.

현실의 경험이 담긴 이야기
리틀 위치 아카데미아는 순수한 열정과 영혼의 아름다움에 눈물을 흘리게 하는 작품입니다.
저는 캐릭터의 귀여움이나 선정성만으로 소비를 유도하는 애니메이션에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위기마저 인물의 매력을 드러내기 위해 작위적으로 만들어지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신념만 부딪치면 이야기에 공감하기 어려웠습니다.
작품이 사실적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유치하고 과장되어도, 창작자가 현실에서 겪은 위기와 경험, 꿈꾸었던 마음이 담겨 있으면 됩니다. 그런 경험은 세대와 관심을 넘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니까요.
그래서 리틀 위치 아카데미아의 유치한 문법은 아름답습니다.

이 작품은 소녀·소년 만화다운 방식으로 거대한 위기를 해결하지만, 주인공을 괴롭히는 문제 대부분은 작고 현실적입니다.

능력은 부족한데 동경만으로 무언가에 뛰어든 사람이 겪는 고민, 남들에게는 사소해 보여도 자신을 압박하는 시련과 설움이 녹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줄거리로 사람을 끌어들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꿈꾸게 되는 마음
앗코는 어떤 사람이나 작품을 동경해서 무작정 뛰어든 마음을 잘 보여줍니다. 그 마음을 이렇게 이해해 주는 작품이 있다는 것이 반가웠습니다.
제게도 어렸을 때 놀라운 경험을 한 뒤로, 형태는 달라져도 본질은 거의 변하지 않은 꿈이 있습니다. 예술과 창작에 걸친 기술 분야라 명확한 길이 없었고, 가정과 학교에서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미래의 굉장한 무언가가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현실 때문에 그 믿음이 흔들리던 때, 전설적인 창작물과 그 창작자가 방황했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뒤늦게 동경하게 된 그 사람이 잃어버린 꿈에 생명을 줬습니다. 샤이니 샤리오를 보고 꿈꾸게 된 앗코처럼요.

그래서 앗코에게 저를 많이 대입했습니다. 다만 그녀가 어떤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 이상적인 인물이었다면 이렇게 공감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꿈을 가진 사람도 현실에서는 비굴해지고 자기 믿음을 의심할 때가 있으니까요.
현실의 방황을 담은 이야기
저는 꿈을 따라 관련 학과에 들어갔지만, 생각했던 것과 실제 배우는 것은 달랐습니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싶었던 저와, 반도체 기업 취업이나 드론·임베디드를 강조하던 학교의 방향은 맞지 않았습니다. 오픈소스와 해커 문화, 게임 같은 창작 분야를 충분히 존중하지 않는 분위기도 답답했습니다.
앗코 역시 마법으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어 마법학교에 왔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마법은 교양과 역사를 배우는 학문이었고, 즐거운 공연을 위한 마법은 낮게 평가됐습니다. 당장 보여 주고 싶은 것은 있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바로 적용하기 어려운 이론에 써야 했죠.
그렇다고 저와 앗코 모두 학교 탓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교육 방향에 대한 불만과 별개로, 그것을 핑계 삼아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을 피하기도 했으니까요.
노력해도 문제아로 보이는 상황에서 앗코는 막연한 기대를 품습니다. 샤이닝 로드로 굉장한 마법을 쓴 경험을 떠올리며, 재능은 있지만 어떤 문제 때문에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합니다.
앗코는 자주 절망하면서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위대한 마녀가 되겠다는 꿈은 버리지 않습니다. 저 역시 세상에 실망한 적은 많아도, 게임이 미래의 굉장한 무언가가 되리라는 믿음은 버린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막연한 기대로 바뀌면 현실도피가 됩니다. 재능 있는 마녀에게 길을 알려준다는 폴라리스의 샘은 앗코에게 잠재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준 채 사라집니다. 앗코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실천 없이 꿈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장면에서는 눈물을 참기 어려웠습니다. 동경하던 사람도 재능만으로 위대해진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진정으로 노력하겠다고 맹세하면서 앗코는 다시 꿈꾸는 사람이 됩니다.
스스로를 믿는 마음
앗코는 이제 꿈꾸기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노력한 만큼 무언가가 된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위대한 마녀가 될 것이라는 믿음은 놓지 않습니다.
저는 운명을 믿습니다. 세상에 정해진 것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입니다.

안정적인 길을 포기하고 시인이나 화가가 되게 하는 힘, 하고 싶은 것을 놓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뒤돌아보면 모든 길이 여기로 이어지도록 되어 있었던 것처럼 느껴집니다.
앗코도 꿈과 운명만 믿으면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샤이니 샤리오라면 같은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기에 계속 나아간다고 느꼈습니다. 제게는 스티브 잡스나 코지마 히데오를 떠올리는 마음과 비슷합니다.
우리 모두 위대해질 운명을 타고 났습니다.
저는 제가 미래에 위대한 무언가가 되고, 재능이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당장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실력 때문에 참담하게 방황했습니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동경하던 사람의 일화를 알게 되면서 다시 제 길을 찾았을 때는 모든 것이 재밌고 쉬워졌습니다.
세상에 절망해도 스스로에게는 절망하지 않으려 합니다. 마음속에 동경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그러기 어려웠을 겁니다.

규칙을 벗어나 꿈을 쫓기
삶의 지도는 자신이 경험한 만큼 보입니다. 앗코도 처음에는 마법학교의 규칙과 교육과정만을 보지만, 마법을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쇼로 만들어 성공하면서 ‘그래도 된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지도가 넓어지니 타인이 정한 마법의 모습에만 묶일 필요가 없어집니다.
작품 속 마법은 재미없고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인식 때문에 쇠퇴하고 있었습니다. 마녀들은 학문적 접근에서 답을 찾지만, 과거의 마녀들이 남긴 비밀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데 있었습니다. 별과 폭죽으로 즐거운 쇼를 보여 주는 것이야말로 진짜 마법이라는 걸 앗코는 알고 있었죠.
소프트웨어도 재미와 감동을 주는 창작이 될 수 있다는 제 생각이 보상받는 기분이었습니다. 학교가 제시한 진로에서 벗어나 직접 만든 게임과 게임 개발 프레임워크로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던 기억도 떠올랐습니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도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어 보면 지도가 넓어집니다. 그렇지만 친구들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요?

앗코는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끼지만, 곁에는 늘 돌봐 주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자신을 걱정하는 아슬라를 뿌리치고 혼자 행동하다 일을 망치는 장면에서는 제 과거를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무언가를 이루려면 재능뿐 아니라 멘토와 자신을 이해해 주는 친구가 필요합니다. 저 역시 혼자라고 생각할 때에도 마음속에는 동경하는 아티스트들이 있었고, 길을 알려준 선배와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잃을 수 없는 꿈을 함께 나눌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압니다.
마치며
앗코에게 저를 대입하지 않고는 보기 어려운 작품이었습니다. 제 경험을 떠나서도 재미있고 잘 만들어진, 꿈이 있는 애니메이션입니다. 마음을 두근거리게 한 첫 화의 대사로 글을 마칩니다.

Extend your hand.
손을 뻗어.
Adventure awaits!
모험이 기다리니까!
My heart is pounding, and my head is spinning,
가슴은 두근거리고, 머리는 빙빙돌지만
but I will become a witch!
그래도 난 마녀가 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