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내가 보는 세상

비겁한 사람들은 다양성의 가면 뒤에 숨는다

정치적인 의미의 다양성을 말한게 아니다.

어떤 분야에 있어 잘 아는 사람은 언제나 만드는 제품의 용도와 범위를 잘 제약한다.

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무엇을 적용해야 하며 어떤 부품이 탁월한 것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들키고 싶지 않기에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말로, 목적에 부합하지 않은 부차적인 것들을 모조리 적용하길 원한다.

무기가 필요한 사람은 무기의 용도를 제한한다. 원거리 무기가 되어야 하는지, 근거리 무기가 되어야 하는지.
가벼운 무기가 적절한 상황에서는 대부분의 부품을 플라스틱으로 제약을 건다. 강한 내구성이 필요한 경우 금속을 대부분 사용할 것을 제한을 걸고, 무기의 용도에 이동하면서 쓸수 없다는 제한을 건다.

이렇게 제약이 한번 걸리게 되면,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은 그 울타리 안에서 극한의 집중력과 창의력을 발휘하여 탁월한 물건을 만든다.

하지만 멍청이들은 직접 사용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이 필요한지 모른다. 원거리도 되고 근거리도 되야하며, 강한 내구성이 필요하지만 가벼워야 하기 때문에 플라스틱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는 식으로 만들자며 모호하게 말을 흐린다.

특히 제품을 모든 부분에서 이해하고 있는 전문가가 제약을 거는 것에 대해 창의력이 없다거나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다고 한다.

하지만 다양성의 정의는 쓰레기를 모두 나열해놓고 선택하는게 아니다.

서로 대비되는 성질을 가지지만, 최소한 자기 분야에 대해서는 극한으로 특화되고 탁월한 몇개의 제품이나 성향들 사이에서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무기를 제공해준다면서, 최첨단 총을 가지고 있는데 옆에다가 뗀석기를 가져다 놓고 다양성이라 우기는 멍청이들이 많다.

다양성은 대등한 정도의 탁월함을 가진 제품들 사이에서나 성립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