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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에서 푸른 눈의 김치 장인을 만나다.

빌뉴스, 리투아니아. 이곳에는 매주 수백 kg의 김치를 손수 담그며 연구에 몰두하는 푸른 눈의 김치 장인이자 빌뉴스 맛집 차오사이 비스트로(Chaosai Bistro)를 운영하는 민다우가스(Mindaugas)가 있다.

김치를 먹어본 한국인조차 그의 김치를 칭찬하며 되돌아오곤 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평범한 가게 주인이 아닌 게 분명했다.

홀 마켓에서의 우연한 발견

2024년 10월, 나는 리투아니아 파트너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빌뉴스에 머물고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나를 빌뉴스의 홀 마켓(Hall Market)으로 데려갔다. 이 시장은 다양한 음식 재료 가게들이 모여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우리는 한국 반찬을 파는 작은 가게에서 배추김치와 당근김치를 샀다.

집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차오사이 비스트로(Chaosai Bistro)라는 퓨전 한식당이 눈에 띄었다. 가게의 냉장고에는 수십 병의 김치가 줄지어 진열되어 있었고, 호기심이 동해 가게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열정의 김치 연구가

주인 민다우가스는 반갑게 맞아주며, 자신의 김치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한국인이 자신의 김치를 평가해줄 기회를 놓치지 않고, 김치를 직접 맛보게 해주었다.

그가 건넨 세 가지 김치(비건 김치, 숙성 김치, 약간 매운 김치)는 모두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비건 김치는 젓갈 등 동물성 재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아 깔끔하고 새콤했다.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내 파트너조차 맛있게 즐겼다.

숙성 김치는 약간의 피클 향이 섞인 은은한 매운맛으로, 한국 전통 김치와는 살짝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약간 매운 김치는 부드럽게 시작해 마지막에 톡 쏘는 독특한 매운맛이 매력적이었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푹 빠질 맛이었다.

김치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는 한 무리의 한국인들이 과거에 그의 가게를 방문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영화 촬영을 위해 빌뉴스에 왔던 이들은 휴식 시간에 시장을 들렸다가, 그의 김치를 맛보고, 촬영이 끝난 뒤 다시 찾아와 여러 병을 사갔다고 한다.

그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당신 김치가 우리 아내가 만든 김치보다 맛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할 때 민다우가스는 마치 그 말을 다시 듣는 듯한 표정이었다.

김치가 담긴 덮밥

며칠 뒤, 나는 다시 그의 가게를 찾았다. 이번에는 그의 메뉴 중 하나를 직접 맛보기 위해서였다. 그의 대표 메뉴는 김치를 활용한 덮밥 요리로, 숙성된 김치와 신선한 재료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 한국식 치킨 김치 덮밥: 바삭한 프라이드 치킨, 달콤한 옥수수, 허브, 그리고 김치가 어우러져 완벽한 한 끼였다.

  • 연어 김치 덮밥: 숙성 김치의 산미가 연어와 환상적으로 어울렸다.

  • 비건 김치 덮밥: 담백하지만 재료들과 김치의 산미가 어우러진, 비건을 위한 완벽한 선택이었다.

그의 음식은 단순히 맛있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숙성 김치의 산미와 다른 재료들의 조화는 색다른 경험을 선사했다.

그는 식사 후 김치 국물을 한 잔 권하며, 김치 국물이 얼마나 건강에 좋은지와 이를 활용한 칵테일 개발 계획을 이야기했다. 김치 국물을 마시다니, 한국에서도 흔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김치 연구실의 비밀

며칠 후, 그는 자신의 김치 연구실(Lab)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시장 뒤쪽의 작은 창고는 그의 실험실로 쓰이고 있었다. 유리병, 냉장고와 함께, 숙성 중인 김치 통들이 숙성 기간과 재료에 따라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벽에는 노트가 붙어 있었다.

그는 김치를 처음 접한 것은 3년 전,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던 음식점이었다고 했다. 그곳에서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기 시작해, 이제는 자신의 방식으로 김치를 재해석하고 있었다.

빌뉴스를 포함한 유럽 어디서도 일식은 유명하고 일식 식당은 흔하다. 하지만 한식은 그렇지 않고, 빌뉴스에서 한식을 다루는 식당은 정말 적다. 그렇기때문에 그는 한식 시장이 성장할 것이라 생각했고, 그 중에서도 자신의 주력인 김치를 밀어붙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김치 재료의 수급과 김치를 만드는 방법이었다. 리투아니아에서 전통적인 방식 그대로 김치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한국인에게도 어려운, 소수의 인원으로 김치를 만드는 방법을 그는 사업가적인 마인드로 훌륭하게 해결했다(물론 그는 여전히 취미삼에 가끔 한국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김치를 만들기도 한다).

그는 현지 재료를 활용하고, 필요 없는 재료는 과감히 배제하는 방식으로 김치의 맛을 끊임없이 개선해나갔다.

그는 조금씩 더 나은 재료를 실험해가며 바꿔갔다. 그렇기에 그의 김치 맛은 항상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고, 내가 그의 가게를 처음 방문했을때 그가 열정적으로 자신의 김치를 내게 맛보여준것도 그 실험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그는 멸치 젖갈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다른 향을 가진 재료를 추가한다. 조미료들도 일부는 의도적으로 누락시킨다.

이것은 놀랍게도 더 나은 결과를 만들었는데 비건 김치가 대표적이다. 내 파트너는 일반적인 김치를 잘 못먹지만, 비건 김치는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유럽은 한국과 달리 비건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옳은 접근법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전에 담갔던 김치의 주스를 모아 다음 김치에 투입하는 방식으로 숙성을 가속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미래) 경쟁자들과 달리 전통적인 김치에 집착하지 않고, 맛있지만 좀더 간략화된 과정으로 만들 수 있어 확장 가능한 김치 '사업'을 만드는데 집중하기로 한것이다.

물론 여전히 김치를 만드는 것은 고된 작업이다. 그는 시장에 있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김치를 만드는데, 과정을 본인이 직접 연구한 방식으로 간략화 했음에도 팔이 너무 아파 힘들다는 농담을 자주 한다.

김치 장인의 야망

민다우가스는 언젠가 더 큰 음식점을 열고, 리투아니아 최고의 김치 제공업자가 되는 것이 목표다. 창고의 작은 창문은 트럭들이 김치 병을 실어나르기 위해 설계되었다고 했다. 그는 심지어 10,000 스코빌 고추로 만든 매우 매운 김치 신메뉴를 개발하며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고 있었다.

다음에 빌뉴스를 방문할 때, 그의 사업이 얼마나 성장했을지 기대된다. 그의 김치 여정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