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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2020년부터 22년 중순까지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는 표현할 수 없는 통증으로 일상 생활과 개발 모두 제대로 하기 힘들었고, 그만큼 답변하지 못한 이메일이 많았다(다행이 지금은 지속적으로 호전중이다).
그렇게 읽지 못하고 쌓인 이메일 중에, 반가운 이메일이 있었다. 지금의 나의 일부를 구성하신 분으로부터 온 메일이었다.
대학시절 나는 모든 것에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몇안되는 "배울 가치가 있는 수업"이 있었다. 그 중에는 "인간 가치의 탐색"과 "우리가 사는 세계"가 있었다. 그리고 박상용 교수님은 그 수업들을 주도한 분이셨다.
박상용 교수님은 자신이 쓴 책이 있는데, 어쩐지 내 생각이 나서 내게 직접 쓰신 책을 권유하는 이메일을 보내주신 것이다.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나는 세상에는 멍청이 아니면 내가 따르고 싶은 천재, 두 종류로만 사람들을 생각하고 행동했다. 그런 행동을 직접 목격하신 분 중 한분이시기에, 그 시절의 기행들이 떠올라 부끄럽기도 하고 너무 반갑기도 했다.
박상용 교수님의 철학 수업은 스스로를 엔지니어보다는 아티스트로 여기던 나에게 필요한 수업이기도 했고, 이제 나에게 게임 개발을 배우는 학생들에게도 분야가 다르지만 가치가 있는 수업이라고 알릴만한 것이었다.
메일을 받은 후 곧장 책을 읽었다. 상당히 재밌게 읽었다. 하지만 건강 문제와 게임 출시 일정으로 소감을 쓰지 못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 책을 읽은 소감을 전하고 싶다.
이 책이 마음에 든 이유
이 책은 개인주의인척 하지만 사실은 보여주기 식 삶을 사는 (한국) 사회를 분석한 책이다. 그리고 보여주기식 삶이 만연한 시대에, 인생을 낭비하기 보다는 어떻게 충실하게 사람답게, 개인으로서 살아갈 것인가 제시한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구성을 가지고 있다.
- 개인주의란 무엇인가? - 다양한 고전과 사건 등을 인용하며 개인주의의 정의와 역사를 설명한다.
- 현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개인주의가 어떻게 왜곡되고 파괴되어 있는지 여러 사례를 거쳐 설명한다.
- 진정한 개인주의를 가지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예제들을 나열한다.
사실 한국의 왜곡된 개인주의는 외부인의 시선으로 봐야 더 잘보이는 법이다. 그리고 저자는 인생의 많은 부분을 독일에서 지내신 분이라 어느정도 독일에서 온 외부인의 시선으로서 잘 까주신다.
나 개인적으로도 유럽인들, 미국인들과 연인으로서 많은 시간을 보냈기에, 그들의 시선으로 살면서 "남에게 보여주기를 포기하고 내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편하고, 행복한지 안다. 그렇기에 공감한 바가 많다.
다만 일부 장에서는 독일인의 시선을 너무 드러내는 것이, 한국 사회에 독일인의 기준을 너무 내세우는게 맞는 것인가 의문이 들긴 한다.
하여간 이 책은 현대 사회, 그 중에서도 한국 사회의 개인주의가 진정한 개인주의가 아닌 천박한 보여주기식 무언가라는 것을 철학과 교수님의 점잖은 언어로 하나씩 밝히며 "까는" 책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나처럼 한국 사회에 늘 화가나 있지만, 구체적으로 왜 그런지 철학적으로 정리해서 말하고 싶지만 정리할 여유가 없었던 사람들에게 꽤 재밌는 책이다(교수님은 점잖으신 분이지만, 오히려 사실은 나처럼 늘 화가나있는 걸지도 모른다🔥).
진정한 예술가가 멸종한 시대
조금 다른 주제지만, 나는 "진정한 아티스트와 진정한 창작자가 멸종하고 있다"는 불만을 가지고 있다. 어딜 가든 "인스타그래머블"한것이 강요된다. 진정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무시되고, 근본없는 "인스타그래머블"한 것들이 모든것의 기준이 되는 것에 매우 불만이 많다.
내 생각이지만, 이는 사람들이 "남들의 부러움"을 사기 좋은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때문이다. 이 부분이 내가 가지고 있는 불만과 책의 내용이 겹치기 시작하는 부분이다. 사람들이 진정 가치있는 것이라고 해도, 남들에게 바로 자랑할 수 없는 것에는 마땅한 존중, 존경을 보이지 않는다.
진정 가치있는 것에 헌신하는 창작자들은 이에 실망하고 상처를 받고 사라져가는 것이다. 사람은 정신적인 존재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진리는 신성한 것이지만, 삶에 물질적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사명감이나 영혼의 부름만 가지고는 가치있는 무언가에 내 삶을 계속 희생할 순 없는 것이다. 마땅한 사회의 최소한의 존중과 최소한의 물질은 필요한 것이다.
특히 내가 "비교"를 원치 않아도, 시스템이 나와 타인을 강제로 비교해서 박탈감을 강제로 주입하는 이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그리고 고독속에 진정한 창작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보여주기식 콘텐츠를 생산하는 가짜 예술가와 창작자들이 넘쳐날 수록, 사람들은 잘나가는 척을 하기 위해 이들을 더욱 소비하면서 가치는 없고 이미지만 과잉 생산되는 싸이클은 더욱 견고해진다.
기술은 강해지는데 우리는 나약해졌다.
과거의 과학과 공학은 사람을 달로 보냈다. 나치의 암흑으로부터 세상을 구했다. 소외된 사람들의 손에 기술을 쥐어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엄청난 연봉을 받는 엔지니어들이 기술로 사람들을 구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쓸데없이 비싼 향수와 자동차 광고를 인스타그램 페이지에 더 노출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이런 불만을 가진 내게 있어, 이 책은 기술이 어떻게 인문과 조화를 이루는 대신 사람을 지배하기 시작했는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다루고 있었다.
고독을 버틸 수 없는 사람들, 자랑만 하는 사람들.
이제 고독을 버틸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사람은 동굴 속에 있어야, 창조적인 행위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런데 모두가 인스타그램, 트위터, 스냅챗으로 항상 연결되어있으니, 그곳에 연결되지 않는 것을 너무나 두려워한다. 그래서 내가 진정 원하는게 뭔지 가슴을 따라 무언가를 창작하지 않는다.
그 대신, 진정 사회에 기여하는 것보다는 빠른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구찌" 소비를 통해 남들로부터의 부럼움을 통한 천박한 인정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타인은, 나에게 부러움을 느낌으로서 나에게 만족감을 줘야하는 물건들로 취급된다. 이는 한국이 타인에게 배려가 없는 사회가 된 원인 중 하나이다.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
장기하의 부럽지가 않어 가사 중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지고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지고
장기하의 "부럽지가 않아"가 노래로 이런 세태를 까는 거라면, 이 책은 "부럽지가 않아"를 철학으로 풀어쓰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다. 옛날에는 그냥 안부러워하면 되었다. 안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부 문서 조차 카카오톡으로 온다.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으면 누군가와 어울릴 수가 없다. 자랑 싸이클에서 개인으로서 독립을 선택하면, 사회적 혜택에서 소외당한다.
반대로 혜택에 소외되지 않으려 자랑의 사이클에 참가하면, 개인으로의 내 인생을 낭비하게 된다.
나는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인스타그래머블하게 살고 싶지 않다. 인스타그래머블하게 끝없이 자랑함으로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과 인스턴스식 자랑 스토리를 주고 받음으로서, 혼자가 되고 싶지않다.
내가 혼자가 된다면 동굴에 들어가,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내 창작을 보여주기 전까지 혼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혼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아닌 무언가를 자랑하느라 혼자가 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내가 잘났다는 이미지를 가져야 한다고 협박하고, 인스타그래머블한 카페 앞에서 인스타샷을 찍느라 풍경을 즐기지도 못할것을 강요한다. 내가 천민들과는 '클라스'가 다른 소비를 할 수 있는, '차이'가 있는 경험을 가진, '플렉스'를 할 수 있는 소비자임을 증명하느라 다들 바쁘다.
게다가 소비만으로는 다른 평민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힘드니, 이제는 '경험'조차도 인스타그래머블한 물질적인 것으로 만들어 팔아대기 시작한다.
난 이 모든 것에 늘 화가 나 있는 상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재밌었다.
다만 개인주의자로서의 실천을 담는 이 책의 내용은 타인에게 추천할때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 설명하기 힘든 단점이 있다.
개인주의자를 다루지만, 개인주의에 대한 여러 방면과 고전들을 한번씩 다 짚고 넘어가다보니 다루는 주제가 넓다. 수많은 사례를 풀어놓다보니 타인에게 이 책을 설명할 단 하나의 강력한 메시지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하기 힘들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개인으로서 행복하게 살기 위한 방법은, 단 하나의 강력한 메시지로 요약되지 않는다. 개인주의는 훈련이다. 훈련은 하나의 메시지로 설명이 안된다. 훈련은 수많은 사례에 대해 매번 부딪쳐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이다.
이 책이 제시하는, 진정한 개인주의로 살아갈 방법 중 하나인 인문학과 교양은 여러 질문과 여러 오답을 통해 자신을 훈련하는 방법이다. 그런건 답이 정해져있지 않고 모호할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를 더 잘아는 더 나은 사람으로 훈련될 수 있다. 여기에 다른 사람의 시선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훈련은 묵묵함과 덤덤함을 필요로 하는 법이다.
보여주기 식 삶의 시대에 어쩐지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분노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볼 만하다.